"한국은 LPGA투어에서 300승을 언제쯤 이룰까?" 한국 여자골프가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고(故) 구옥희가 1988년 첫승을 거둔 이후 100승(2012년 8월 제이미 파 톨레도 클래식, 유소연 우승)까지 24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200승(2021년 10월24일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고진영 우승)까지는 불과 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300승도 수년 내 달성 가능할까. 안타깝지만 그에 대한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연합뉴스·AFP연합
도전자에서 이제 도전받는 입장으로
지난 10월24일은 한국 골프의 기념비적인 날이다. 고진영(26)이 LPGA투어 200승 쾌거를 이뤘다. 물론 한국 선수 48명이 이뤄낸 합작품이다. LPGA 무대에서 통산 200승을 거둔 나라는 1527승의 미국 외에 한국이 유일하다.
외국 언론들도 일제히 한국의 통산 200승 달성을 집중 조명했다. USA투데이 자매지 '골프위크'는 "고진영은 한국 선수로 LPGA투어에서 첫 승을 올린 구옥희에 이어 김주미(37) 50승, 유소연(31) 100승, 양희영(32) 150승에 이어 200승의 주인공이 됐다"며 "LPGA투어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선수인 박세리(34)부터 박인비(33), 김세영(28,) 신지애(33), 고진영 등이 가장 크게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이들의 활약상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골프위크는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한국 골프에 '혁명'을 일으켰다"며 "박세리는 통산 누적상금 1258만3713달러(약 146억8393만원)를 획득했고, 123회 '톱10'과 25승 그리고 한국 선수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과 함께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을 휩쓸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의미는 통산 200승 달성이 한국 무대에서 달성됐다는 점이다. 물론 부산에서 열린 국내 유일의 LPGA 대회인 이번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대회의 아쉬운 점도 있다. 올 시즌 3승을 올리며 고진영과 세계랭킹 1위와 올해의 선수상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인 넬리 코다(미국)가 불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렉시 톰슨(미국), 브룩 헨더슨(캐나다), 제시카 코다(미국) 등 세계 톱랭커들이 일부 빠진 탓에 처음부터 한국 선수의 우승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도 했다. 실제 톱10에 든 11명(공동순위 포함) 가운데 한국 선수가 8명이었으며, 나머지 3명도 국적만 미국·뉴질랜드일 뿐 모두 한국계 선수들이었다.
구옥희의 LPGA투어 첫 우승은 한국 골프뿐 아니라 스포츠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당시 1988년 서울올림픽 열기에 묻혔다. 그런 뒤 사실상 LPGA 1세대라 할 수 있는 박세리·김미현·박지은이 '트로이카'를 형성해 LPGA투어에서 우승을 보태기 시작했다. 여기에 '세리키즈'들이 속속 등장하며 LPGA투어를 '한국판'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세리키즈의 선두주자인 박인비를 보고 배운 '인비키즈'까지 가세하며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 골프 최강으로 우뚝 섰다. 특히 박인비는 120년 만에 부활한 2016년 리우올림픽 골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방점을 찍었다.
한국 골프사에 한 획을 그은 일등공신은 역시 박세리다. 박세리는 1998년 맥도날드 LPGA챔피언십을 시작으로 2010년 벨마이크로 클래식까지 한국 선수 중 최다승인 25승을 기록했다. 박세리는 US여자오픈에서 제니 추아시리폰(태국)과 92홀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승컵을 안아 IMF 경제위기 때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맨발의 희망 샷'을 날리며 큰 위안을 주기도 했다.
은퇴한 박세리에 이어 박인비가 21승으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빨간 바지' 김세영이 12승, 미국에서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옮긴 신지애가 11승, 고진영이 11승을 각각 올리고 있다. LPGA 무대에서 여전히 맹활약 중인 박인비, 김세영, 고진영 등이 박세리의 기록을 넘어설지도 관심사다. 48명의 선수 중 2승 이상 올린 선수는 모두 29명이다. 올 시즌 현재 2개 대회만 남겨둔 가운데 한국은 고진영 4승, 박인비·김세영·김효주가 각각 1승씩으로 7승을 거뒀다.
5년 연속 신인상 명맥 끊겨…'젊은 피' 수혈 절실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지만, 지금껏 탄탄대로를 달려온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한국은 올 시즌 LPGA 신인상과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를 모두 놓쳤다. 특히 5년 연속 이어온 신인상 수상 기록을 올 시즌에는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우승한 패티 타바타나킷(22·태국)에게 내줬다. 타바타나킷은 지난 8월 메이저대회 포인트 1위에게 주는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도 가져갔다. 한국은 지난해 비회원으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LPGA투어에 Q시리즈 없이 '무혈입성'한 김아림(26)에게 올 시즌 6년 연속 신인상을 기대했지만, 신인상 포인트 랭킹 7위에 그쳤다.
김아림은 올해 우승 없이 지난 7월 다우 그레이스 레이크스 베이 인비테이셔널과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를 한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다. 한국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김세영, 전인지(27), 박성현(28), 고진영, 이정은6(25)이 5년 연속 LPGA투어 신인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신인상 수상자를 정하지 않았고, 2020년과 2021년 신인을 대상으로 올해 신인상을 진행했다.
한국이 침체 현상을 보이는 것은 단순히 신인상 명맥이 끊겼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올해 미국에 진출한 선수가 1명뿐이다. '루키'의 맥이 끊기고 있는 데다, 한때 세계랭킹 1위였던 박성현이 어깨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져 있고, 이정은6을 비롯해 유소현·전인지 등이 우승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동남아에서 더욱 나이 어린 선수들이 LPGA투어를 계속 노크하는 것과 달리 '젊은 피' 수혈이 절실한 한국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의 위상이 높아진 점도 한몫을 한다. 국내 대회 수와 상금액이 크게 증가하며 LPGA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굳이 미국 진출이란 모험을 감행할 필요성이 덜해진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해외 진출 제약 탓도 크다.
'희망'적인 뉴스도 있다. 아시아 최강을 선도하고 있는 KLPGA가 '아시아 골프 리더스 포럼(Asia Golf Leaders Forum)'을 출범시켜 레이디스아시안투어(LAT)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2개 대회나 치렀고, 아시아 17개국에 중계방송됐다. 아울러 KLPGA투어도 아시아 지역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이처럼 다양한 골프에 대한 애정과 노력이 세계적인 한국 선수를 길러내는 데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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