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 국토종단 2회. 4,200㎞ 국내 해안일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 네팔, 홍콩, 몽골, 티베트, 아이슬란드, 시칠리아 등 50여개국 도보여행. 100㎞ 울트라 걷기 대회 완주. 50㎞에 달하는 지리산 최장 코스인 화대 종주 10번.
이 어마어마한 기록의 주인공은 올해 만 79세의 황안나씨다. 신체 건강한 20대는 물론, 전문가들도 쉽지 않을 이 여정을 황씨는 남들이 다 ‘늙었다’고 하는 65세때부터 시작했다.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다. 그저 ‘먼 길 넘어 찾은 마을에 누가 살까’ 궁금했을 뿐이다. 그렇게 한발 한발 걷다 보니 어느새 ‘도보여행가’ ‘강연자’ ‘여행작가’라는 제2, 제3의 직업까지 얻었다.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 송도에서 만난 황씨는 “호기심과 열정이 이끄는 대로 걸었을 뿐”이라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황씨는 쉰 여덟의 어느 날 돌연 은퇴했다. 정년이 한참 남은 때였다. 이날의 결정은 그가 인생에서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내린 첫 선택이었다. 맏딸이었던 황씨는 동생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작가의 꿈을 접고 교사가 돼야 했다. 결혼 후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끌어가느라 정작 자신은 뒷전이었다. 황씨는 “39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50대가 넘어서야 처음으로 내 월급을 내 마음대로 써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씨가 길을 나서게 된 건 그로부터 약 7년 지난 65세때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해남 땅끝마을이 나왔다. ‘땅끝’이라는 이름이 아련했다. ‘더 이상 길이 없다’는 막막한 그리움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마침 한비야씨가 쓴 책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즐겁게 읽은 참이었다.
‘국토 종주를 해봐야겠어.’ 황씨가 마음을 먹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은퇴 후 산악회 활동을 하며 이 산 저 산 경험해본 황씨였다. 정작 그 길을 같이했던 산악회 동료들이 먼저 말렸다. “산악회 회장조차 나더러 ‘누님 너무 늦었어요’ 라는 거 있죠.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거였죠.”
더 큰 난관은 가족이었다. 당시만 해도 도보여행은 물론 여성 혼자 여행하는 일도 드물던 시절이다. 남편에게 ‘혼자 40일간 국토종주를 하겠다’ 고 말하려니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친구들과 같이 간다’고 말해버렸다. “솔직히 그때 남편이 반대하길 내심 바랐어요. 혼자 여행가는 것도 처음인데다 그 먼 길을 걷자니 겁이 덜컥 났죠.” 하지만 남편은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첫 도보여행이 시작됐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황씨는 혹시 길을 잃을까 걱정돼 한비야씨 책에 나온 모든 경로와 숙소를 고스란히 적어 떠났다. 하루 이틀 여행이 계속되자 남의 것만 같았던 길이 황씨의 것이 됐다. 한비야씨가 49일에 완주한 800㎞ 길을 황씨는 23일만에 다 걸었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12㎏짜리 등짐을 짊어지고 하루 40㎞씩 걸었다. 황씨 스스로도 ‘가위눌릴 것 같은 길’이라고 기억한다. 황당한 일도 겪었다. 배낭에 붙은 ‘도보여행중’ 이란 표시를 보더니 ‘나 같으면 서방 혼자 두고 떠나는 여자랑 이혼하겠다’는 황당한 악담을 퍼붓는 남정네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행을 계속한 건 걷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 때문이었다. 응원의 뜻으로 건네 받은 과자와 음료수를 양손에 들고 걸은 적도 있었다. 숙소가 없어 신세 진 노인은 ‘하루 더 자고 가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황씨가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 매일 쓴 블로그 글이 유명해지면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다. 통일전망대 가는 길목 민간인출입통제선은 차를 타고 가야 했지만, 당시 국방부의 배려로 헌병과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모든 만남이 새롭고 애틋했다.
황씨는 도보여행을 해온 15년을 ‘제2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뿌듯한 건 학창시절 장래희망이었던 ‘작가’의 꿈을 이룬 것이다. 2005년 국토종단 여행기를 담은 ‘내 나이가 어때서?’를 출간한 이후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등 4권의 책을 펴냈다. “첫 책은 18쇄까지 나갔고 해외에서도 팔려요” 황씨가 수줍은 자랑을 했다.
특히 황씨는 첫 책이 출간됐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책이 서점 책꽂이에 진열된 모습을 보는 것.’ 단발머리 중학생 때부터 꿈꿔온 일이다. 그런 일이 예순이 넘어서야 이뤄졌으니 뿌듯함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책이 출간된 날 서울의 대형 서점에 갔는데 한 남성분이 제 책을 보다가 두 권을 집어 계산대로 가더군요. 너무 고마워서 쫓아가서 내가 계산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러면서도 황씨는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는 건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작가가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이는지 알기에 그 이름이 부담스럽다는 겸손이다.
대중 강연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걷기가 준 선물이다. 황씨의 모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 해 수십 차례씩 강연을 다닌다. 벌써 9월에 계획된 강연만도 7개나 된다. 황씨의 강연에는 ‘도보여행 꿀팁’ 같은 실용정보는 없다. 그저 그가 살아온 인생을 담담히 이야기 할 뿐이다. “나처럼 하얗게 늙은 할머니도 여행하고 도전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단에 섭니다. 여든이 다된 할머니 강연자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 중 한 사람만이라도 ‘나도 늦지 않았다’ 라고 느끼면 좋겠습니다”라고 황씨는 말했다.
걷기로 다시 시작한 사회생활 덕에 자녀들에게 손 벌릴 일 없이 사는 것도 자랑이다. 황씨는 강연료, 책 인세 등 다양한 활동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소득세 내는 할머니’로 살고 있다. 동년배의 노년 여성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무료강연 등 봉사활동에도 자주 참여한다. 재능이 있고 쓰임이 있을 때 가능한 많이 나눈다는 철학이다.
황씨는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됐다. 황씨는 “60~70대와 달리 80대는 정리가 필요한 시간” 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제주에 있는 수 많은 오름 중 20군데밖에 가보지 않았기에 더 많은 곳을 탐방하고 싶다. 볼리비아의 우유니사막에 가서 유리알 같은 경치를 즐기고 싶다. 80대에도 지리산 종주가 가능한지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당장 올 가을에도 지리산 화대종주를 갈 생각이다.
하지만 베테랑 여행가 황씨의 계획조차 ‘노욕(老慾)’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앞서는 문화 탓이다. 황씨는 이를 “몸보다 마음이 더 늙어버린 사회” 라고 말했다.
시니어의 도전이 쉽지 않은 이유다. 황씨는 “매번 여행을 나설 때마다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멈추지 않았다”며 “남들이 늦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의 한 구절처럼,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이고, 살아있는 그 나이가 바로 생애 가장 젊은 날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도보여행을, 도전을 꿈꾸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들에게 황씨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밤을 지새워 100㎞를 걷는 ‘울트라마라톤’에 참여했을 때 제가 바란 건 완주가 아니었어요. ‘내가 얼마나 걷고 기권하려나’ 궁금해서 참여했죠. 아예 안 해본 사람보다, 단 10㎞, 50㎞라도 걸어본 사람이 낫습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