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삼국지로 본 골프 女傑..관우 닮은 박인비, 마초 같은 허윤경

엘리자 2014. 12. 12. 14:31

 

 

삼국지로 본 골프 女傑..관우 닮은 박인비, 마초 같은 허윤경
삼국지로 본 골프 여걸들.
[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삼국지는 중국의 후한 말기에서 진나라 통일까지의 기록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역사보다 더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다. 딱딱한 서술이 아닌 등장인물의 행적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 인물로 한국 골프 여자 스타를 풀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맏언니 박세리(37)가 유비와 닮은꼴이다. 박세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한국의 이름을 알린 선구자다. 1990년대 후반 골프 변방에서 온 한 작은 소녀가 세계를 호령했다. 이후 골프 선수 최고의 영광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후배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박인비, 안선주, 허윤경, 김효주, 백규정 등 올해 맹활약을 한 ‘세리 키즈’들은 유비를 따르던 오호대장군(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과 닮았다.

◇박세리-유비

박세리는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과 LPGA 챔피언십을 연거푸 우승했다. 특히 US여자오픈에서의 ‘맨발 샷’ 장면은 당시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줬으며, 한국 골프의 부흥을 이끌었다.

LPGA 투어 경력 17년째이지만 여전히 ‘현역’임을 강조하고 있는 박세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프 아이콘’이다. 올해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한 프로 선수들은 그와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려고 경쟁(?)을 벌였다.

주위의 적도 없다. 용기와 과단성을 발휘하면서도 적대관계가 생길까 스스로 경계한다. 덕장(德將) 유비의 모습 그대로다. 유비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기품을 잃지 않았다. 아들 유선을 향해 “인자하게 사람을 대해라. 그래야 그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유언했다. 박세리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후배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들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다.” 후배들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선배다.

◇박인비-관우

오호대장군의 첫 번째 서열인 관우는 중국에서 신의 반열의 오른 인물이다.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었다. 유비가 덕으로 부하들을 이끌었다면 관우는 실전에서의 성과로 이름을 떨친 용장(勇將)이었다. 당대의 거물들은 모두 관우를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은 존경심으로 이어졌다.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인비(26)는 이후 길고 긴 슬럼프에 빠졌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용히 ‘칼’을 갈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5년을 기다린 끝에 찾아온 영광. 박인비는 지난해 메이저대회 3연승을 포함, 시즌 6승을 올리면서 세계랭킹 1위, 상금왕, 올해의 선수를 독식했다.

관우는 후한 시대의 ‘전쟁 신’이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오기 어려울 정도의 영웅이라 불리는 조조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장수다. 박인비 역시 골프를 전쟁과 비교한다면 이미 ‘신’의 반열에 오른 선수다. 경기 내내 표정 변화가 없어 경쟁자들은 그의 모습에 한기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붙은 별명이 ‘조용한 암살자’다. 지난 10월 결혼식을 올린 후에도 우승을 일궈냈다. ‘칼날’은 여전히 매섭다.

◇백규정-장비

새내기 백규정(19)은 올해 KLPGA 투어에서 3승을 올렸고, 하나·외환 챔피언십 우승으로 미국행 티켓도 거머쥐었다. 경기 내적으로는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 보여준 돌출 행동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버릇없는 후배라는 수군거림도 여러 차례 나왔다. 스코어카드 오기에 대한 오해, 벌타로 인한 경기위원과의 마찰 등도 시즌 내내 백규정을 괴롭혔다.

장비는 술을 좋아하고, 성질 급한 인물로 알려졌다. 싸움에서도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거듭될수록 치밀한 작전을 수립할 줄 알게 됐고,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장수로 변해갔다. 적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적도 많다.

2014년 백규정의 모습은 장비의 젊은 시절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 이제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싸움꾼’ 주홍글씨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경상도 특유의 짧은 말과 무뚝뚝한 표정으로 생긴 오해다. 하지만 모두 내가 부족한 탓에 생긴 일임을 인정하고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맹수 기질은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백규정은 “내년 목표는 LPGA 투어 신인상이다. 실력은 같다. 한국 골프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김효주-조운

‘조자룡’으로 더 익숙한 조운은 삼국지에서 가장 무예가 뛰어난 장수로 그려진다. 단신으로 조조의 진영으로 들어가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낸 장판교 전투는 삼국지 최고의 전투 장면으로 꼽힌다. 뛰어난 전공으로 유비의 오호대장군이 된 조운은 선비의 덕을 겸비한 위대한 장수였다. 조운이 죽자 제갈량은 “나라의 대들보가 꺾였고, 나의 한쪽 팔이 잘려나갔다”며 탄식했다.

조운은 창술과 검술, 그리고 활에도 능했다고 전해진다. 골프로 따지면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선수다. 김효주(19)를 보면 젊고 잘생긴 조운의 이미지를 그대로 닮았다. 2014년은 김효주로 시작해 김효주로 끝난 해다. ‘골프신동’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김효주는 올해 KLPGA 투어에서만 5개의 우승컵을 챙겼고, LPGA 투어 메이저대회도 들어 올렸다. 내년에는 미국을 주 무대로 활동한다.

김효주의 강점은 ‘교과서 스윙’에서 비롯된 완벽한 코스 매니지먼트다. 장타력은 중위권이지만 그린 적중률, 퍼팅 능력은 타의 주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또 하나. 19세의 어린 나이답지 않은 강한 멘탈을 지녔다. 비법은 바로 골프백에 항상 들어 있는 ‘멘탈 노트’. 김효주는 선배들이 말한 내용과 자신의 경기 내용을 꼼꼼히 노트에 적는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프로 정신이다.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위기 상황을 이겨내는 능력은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허윤경-마초

유비와 마초는 전장에서 적으로 처음 만났다. 조조의 군대와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유명세를 떨친 마초를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유비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전략으로 마초의 무릎을 꿇렸다. 유비의 풍모를 본 마초는 “이제야 주인을 만났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마초는 유비를 만나기 전까지 조조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였다. 하지만 출중한 무예와 기개로 훗날 장비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른다. 간혹 심리학 용어인 ‘마초 신드롬’과 혼돈돼 성격이 급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삼국지에서의 마초는 성격이 온화하고, 정이 많으면서도 남성미가 넘치는 대장부다.

2010년 KLPGA 투어에 입성한 허윤경(24)은 2012년 네 차례나 준우승에 머물면서 ‘비운의 스타’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첫 우승은 지난해 5월 열린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오래 기다린 만큼 진한 눈물을 흘렸다. 올해는 2승을 거두며 상금 랭킹 2위로 KLPGA 투어 대표 선수로 거듭났다. 마초처럼 조금 늦게 빛을 본 것이다.

멘탈이 약하다는 지적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탈출했다. 서울경제 레이디스 오픈에서 김효주와의 연장전을 승리로 이끈 허윤경은 “연장전 상대가 김효주라 부담이 컸다. 꼭 넘어야 할 산을 넘어서 그 어느 때보다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안선주-황충

올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를 평정한 안선주(27)는 상처가 깊은 선수다. 2006년부터 4년간 국내에서 7승을 올렸지만 기업들은 그를 외면했다. 외모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부 기업은 성형수술을 권하기도 했다. ‘골프만 잘 치면 된다’라는 자신의 오랜 생각이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물거품이 된 후 안선주는 국내를 떠나겠다고 맹세했다.

미국 진출이 여의치 않았던 안선주는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 역시 외모를 보긴 하지만 한국처럼 심하진 않고 선수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개성을 존중해 준다. 피나는 노력으로 스폰서가 6개나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이나 재일교포 기업은 없고 모두 일본과 미국 기업들이다.

안선주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력 없는데 얼굴 예뻐서 스폰서 있는 선수들, 내가 이긴다”는 글을 남겨 화제를 낳기도 했다.

삼국지에서의 황충은 긴 수염에 사람 키만 한 활을 들고 말을 거침없이 타는 캐릭터로 기억된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나이 든 노인의 힘이 장사와 같으면 ‘황충’이라고 지칭한다.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안선주도 골프 선수로는 베테랑급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신인 시절을 뛰어넘는 지독한 연습량으로 장타를 때려내고, 쇼트 게임 능력까지 갖추면서 2010년과 2011년, 그리고 올해까지 세 차례나 상금왕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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