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쿨티다
는 한 백인 갤러리의 소행이었는데 홀컵을 교체한 후에야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의 끈질긴 투쟁 덕분에 1960년 흑인도 PGA 회원이 될 수 있게 규정이 개정되면서 이듬해 비로소 투어카드를 획득, PGA투어 그레이터 그린스보로 오픈에 참가할 수 있었다.
시포드는 이때의 코스 분위기를 "살해 협박의 공포를 느꼈을 정도"라고 자서전에서 술회했다. 흑인 최초로 PGA투어 2승의 기록을 세운 시포드는 2004년 흑인 최초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7년에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대학으로부터 명예법학박사를,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타이거 우즈는 "시포드의 희생이 새 역사를 창조했고, 내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며 축하했다.
쿨티다는 태국인과 네덜란드인, 중국인 혼혈로 1966년 태국 미군기지로 파견됐던 얼 우즈를 만나 1969년 결혼, 미국으로 이주해 1975년 타이거 우즈를 낳았다. 남편 얼 우즈가 아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고 대회에 열심히 출전할 때 쿨티다는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아들에게 자존감, 불굴의 정신력, 타인에 대한 존경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즈의 역사적인 우승 순간을 함께 했다. 1997년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메이저 첫 우승을 했을 때 현장에서 지켜봤고, 2019년 11년 만에 마스터스에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추가했을 때도 아들과 기쁨을 나누었다. 타이거 우즈의 상징인 빨간 셔츠도 쿨티다의 아이디어다.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6월 '밥 존스 어워드'을 받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충분한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항상 아버지와 함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머니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평생 그곳에서 나와 함께 했다"며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밥 존스 어워드는 1920~30년대 메이저 대회에서 통산 13승을 거둔 '영원한 아마추어' 보비 존스의 이름을 딴 상으로, USGA 주관 시상 가운데 최고 영예로 평가받는다.
PGA투어 메이저 15승을 포함해 샘 스니드와 함께 최다 우승 타이기록인 통산 82승을 기록 중인 우즈는 2019년 당시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고 2022년에는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쿨티다의 별세 소식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녀는 더 푸른 페어웨이로 떠났다. 쿨티다는 타이거에게 놀라운 영향을 미쳤고, 강인함과 탁월함을 부여했다"며 애도했다.
오늘의 타이거 우즈는 결국 아버지 얼 우즈와 어머니 쿨티다 합작의 '혼혈의 애환이 빚은 걸작(傑作)'이 아니겠는가.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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